📢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입장문]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쟁, "처벌보다 책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최근 촉법소년 연령 하향 검토가 지시되면서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엄벌주의의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는 것이 청소년 범죄의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한국회복적정의협회의 공식 입장을 전해드립니다.
👇 아래 전문을 통해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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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회복적정의협회의 입장문]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쟁, 처벌보다 책임을 가르쳐야 한다!"
최근 대통령이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촉법소년 연령 하향 검토를 지시하면서, 1963년 형법 제정 이후 70여 년 만에 촉법소년 연령이 실제로 낮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청소년 강력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피해자의 고통과 사회적 불안을 생각하면 이러한 목소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연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는 것이 청소년 범죄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의 논쟁은 대부분 “몇 살부터 처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우리는 청소년에게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사회는 청소년의 잘못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와 경험은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청소년 범죄가 효과적으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히려 형사처벌 중심의 대응은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청소년에게 낙인을 강화하고 또 다른 범죄 환경에 노출될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사회로 돌아온 이후에도 ‘범죄자’라는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사회로부터 다시 밀려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러한 처벌 중심의 접근은 자신이 일으킨 피해와 피해자를 향한 관심과 책임보다, 자신의 피해에 집중하게 만들고 오히려 스스로를 ‘억울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왜곡현상을 강화하기 쉽다.
청소년 범죄는 성인 범죄와 그 성격이 다르다. 물론 상상하기 어려운 강력 범죄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건은 계획된 범죄라기보다 충동적 일탈이나 또래 간 갈등, 사이버 범죄와 재산범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건을 성인 범죄와 동일한 처벌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 해결책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청소년 범죄는 개인의 일탈만이 아니라 가정의 해체, 학교 부적응, 지역 공동체의 약화 등 다양한 사회적 요인도 청소년 문제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청소년은 아직 성장 과정에 있으며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따라서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함께 나누고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접근이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이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를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의 손상으로 이해하고, 피해 회복과 책임 이행을 통해 훼손된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질랜드의 가족자율협의회(Family Group Conference) 제도이다. 이 제도에서는 가해 청소년, 가족,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해결 방안을 함께 찾는 공동체적 접근이 핵심이다.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피해와 감정을 직접 전달할 기회를 갖고, 가해 청소년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후 참여자들은 함께 논의하여 사과와 피해 회복 방법, 재발 방지를 위한 책임 이행 계획을 마련한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처벌보다 훨씬 강한 교육적 효과를 갖는다. 청소년이 자신의 행동이 남긴 상처를 이해하고,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직접 책임을 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접근만으로 사회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70년 전의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달라진 시대와 문화만큼 책임을 가르치는 방식 또한 변화해야 한다. 형벌을 통한 책임만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에 맞는 더 발전된 책임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 연령 기준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의 연령을 낮추는 것보다 책임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신의 행동이 남긴 피해를 이해하고,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책임을 지도록 돕는 정책이야말로 피해자를 위한 책무를 강화하고 청소년에게 실질적 책임을 배우게 할 수 있다. 촉법소년 논쟁은 단순히 형사책임 연령을 몇 살로 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며,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를 가르치고 훈육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몇 살부터 처벌할 것인가?”라는 논쟁을 넘어 “어떻게 책임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6년 3월 12일 사단법인 한국회복적정의협회 |